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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번역) 일본과 한국의 축구 황금세대가 서로 이야기했던 전설의 "치앙마이의 밤"을 완전재현

by 차삐라 2016.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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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재일3세인 신무광(慎武宏)씨의 글로써, 다른 기사의 참고 기사로 번역한 것입니다.

해당 기사의 번역본은  

( http://chappira.tistory.com/800   :  전북 이동국이 지금에야 밝히는 일본 축구 황금세대와의 "우정비화" )에 있습니다.

 

번역 중에 직역, 오역, 의역이 있으니 반드시 원문과 비교하십시오.

( 원문 : http://s-korea.jp/archives/11691/ )

 

 

(사진 : FA Photos )

 

 

일본과 한국의 축구 황금세대가 서로 이야기했던 전설의 "치앙마이의 밤"을 완전재현

 

 

잊을수 없는 취재가 있다. 1998년 10월에 동남 아시아의 태국 치앙마이에서의 취재다.
그때 치앙마이에서는 제31회 아시아유스(U-19) 선수권이 열렸다.

 

당시 일본은 키요쿠모 에이준 감독이 팀을 이끌고, 오노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타카하기 나오히로, 나카타 코지, 모토야마 마사시, 오가사와라 미쯔오, 반도 류지 등 쟁쟁한 얼굴들이 있었다. 이른바 "황금세대"다

한국도 같았다. 19세로 1998년 월드컵에 출전한 이동국을 비롯해,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송종국, 설기현이 있었고, 김은중 (전 센다이), 박동혁 (전 카시와). 서관수(전 기후)등, 그 후 J리그에 온 선수도 있었다.

 

 

■ 결승전 밤에 일어났던 사건

 

그런 선수들이 격돌. 일본과 한국은 그룹 리그에서 먼저 대전해, 결승전에서도 자웅을 가렸다. 둘다 승리한 건 한국으로, 일본은 준우승으로 끝났지만, 두 나라는 피치에서의 격렬한 대결과 달리, 또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그 에피소드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건 결승전을 끝낸 밤. U-19 한국대표를 이끈 박창선 감독의 방에서 인터뷰를 끝낸 뒤였다.
방을 나와 플로어 복도를 걷고 있는데, 이동국과 박동혁이 불러 세웠다
"잠깐 우리 방에 와 주실레요?"

 

말하는 대로 이동국 방에 가보니 거기에는 일본의 반도류지와 오가사와라 미쯔오가 있는게 아닌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은 호텔에 숙박하고 있던 한일 젊은 선수들은 대회 기간중에 얼굴을 마주쳐서 사이가 좋아지게 돼, 둘은 이별 인사를 하러 이동국 방을 찾았다고 한다.

 


■ 그들은 왜 친해졌나

 

단지 말이 안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돼서, 일본어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내가 지나가서, 갑자기 내가 한일 선수의 통역을 맞게 된 것이다.
그 때 일은 "주간 사커 다이제스트" 1998년 12월 2일호에 기고했지만, 그 기사의 일부를 여기에 재현한다.

 

 


■ "한일 젊은 스타들이 밝힌 "치앙마이의 밤""

 

아시아 유스 후, 이동국이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알려줬다.
"사실은 이전 반도가 우리들 방에 놀러왔다. 손짓, 몸짓 이야기였지만 서로가 통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선수가 한국 선수의 방을 방문해, 한때를 보냈다. 이동국으로부터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같은 호텔에 있다고 해도, 대회중에 그런 교류가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떤 기획으로 한일 서포터간 대담이나, 시민 레벨의 교류회를 마련했던 경험으로부터 느끼는 "어치피 형식적인 교류이겠지"라고 의심도 했다.

 

 

 

■ 스태프가 잠든 중에 시작된 교류회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선수들은 건전한 교류를 위해서도 아니면 누구에게도 강요받은 것도 않았다.

스스로 한국 선수의 방을 찾은 반도는 이렇게 회상했다.
"대회전에 방콕에서 한일 선수가 스쳤다. 내 좌석 바로 뒤에 한국선수가 있었다. 첫인상은 "인상이 안좋다."ㅋㅋㅋ 하지만 실은 꽤 좋은 녀석이있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방에 놀러 오지않을래?"라고 해서, 바로 찾아갔다."

 

방콕 공항에서 얼굴을 익힌 반도와 한국 선수들은 치앙마이 호텔에서도 인사를 나눌 사이가 돼, 정신 차리닌 한일 양국 선수가 해석할 정도의 인사를 교환하게 됐다.

 

그룹리그에서 대결한 밤에는 한국 팀의 주장이었던 김건형이 오노 신지를 불러 세우고 서로의 건투를 이야기한 후, 결승에서도 한일 대결을 하자고 서로 맹세했다.

"오노와는 U-16 때도 시합을 한 적이 있어 서로 잘 기억하고 있었고, 등번호도 같고, 주장이어서, 친근감이 들었다. 플레이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훌륭한 녀석이었다.! 시함에서는 격렬히 부딪혔지만, 한마디 전했다. 결승에서 다시 하자고" (김건형)

 

이런 교류를 거듣하면서, 결승전을 싸운 일본과 한국. 그런 격렬한 시합 덕분에 한일 일레븐이 급접근 하고 있던 건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이 결승 후에 일어났다. 양국의 코칭 스태프도 잠든 심야, 이동국과 김은중의 방에 한일 일레븐이 모여, 아침까지 토론회가 아닌, 아침까지 교류회가 열렸던 것이다.

 

 


■ 오노, 모토야마, 나카타 코지등이...

 

처음은 이동국, 김은중, 정용훈 등 한국선수와 반도, 오가사와라 일본인 선수의 교류였다.

거기에 속속 한국 선수가 출입하는 사이에 "일본 선수를 좀더 초대하자"라고 이동국이 말을 꺼냈다.

이 제안에 전원이 찬성해, 모두 함께 일본 선수을 맞이하러 가게 됐지만, 오전 12시를 넘긴 초대. 설기현과 이윤섭은 "거절당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지만, 일본 선수는 그정도로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다.

 

 

 

■ 그들은 뭘 밤새 이야기했던걸까

 

오노, 모토야마, 카네코 세이지, 이나모토, 타카하라, 사카이 등의 얼굴들이, 분위기를 띄우는 역의 정용훈과 나카타 코지에 이끌려, 교류회에 참가한다.

 

모토야마와 김은중은 교환한 유니폼을 소매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2번째라 한일의 거리는 훨씬 줄었다. 다음은 서로 질문공새다.
"J리그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는 누구?"
"한국에는 병역이 있는가?"
"나는 3번 한국에 간적이 있다"
"일본과 고등학교때부터 교류전을 했다"등 양국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자지러지면서 한일 축구 비교에 꽃을 피웠다.

"나카타 히데토시와 고종수 중 누가 잘할까?"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일 모두 승리못했던 원인은 뭔가"등.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 2번의 대전을 되돌아보며 서로의 약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서로 교환했다.

 

어느샌가 화제는 젊은이 문화 교류와 한국인의 일본관과 일본인의 한국관등의 이야기까지 나오며, 몇몇 선수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 결승전에서 못했던 유니폼 교환

 

다만 즐거우면 즐거울 수록,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정신 차리니 시계는 오전 5시를 지나, 한국 선수가 호텔을 떠나 출발할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시상식 이유로 결승전 후에 교환 못했던 유니폼을 지금 여기서 교환하자!!"

이 제안을 받아들여, 모두가 유니폼을 교환하고 서로 얘기했다.
"다음에는 안질거다 "월드컵에서 만나자!"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야기해 다행이다."

 

말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가득찼다. 90분간 싸움, 밤새며 이야기했지만, 필요한 표정을 보인 것은 누구 하나 없었다.

다만 한사람만 쓸쓸한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은 한국의 서관수였다.

 

 


■ 각자가 맹세한 "2002년"

 

천재 MF로 불리며 축구를 시작했을때부터 한국 축구의 엘리트 길을 걸어온 그는 아시아 유스에서 처음 좌절을 맛봤다. 예비 멤보로서 대회에는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래도 태만하지 않고, 매일밤 러닝을 했지만, 그런 서관수만은 유니폼을 효환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 선수가 10명 이상인거에 비해, 일본 선수는 8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우울한 표정을 눈치챈것이 오노, 오가사와라, 나카다 코지 3명이었다. 그들은 서관수를 일본 선수가 숙박하는 플로어까지 데려가서는 한장의 일본 대표 유니폼을 손에 들고 돌아와 그걸 서관수에게 전했다.

 

서관수는 말했다.
"아마도 나는 월드 유스에서 싸울 멤버에는 선발되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본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하고 싶었다. 일본과는 U-16에서도 대전했지만, 유니폼을 교환하지 못했다고 해도, 예비 멤버라도 아시아 유스에 참가해 일본 선수와 교류를 가졌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3명이 나를 위해 뛰어다니는 걸 봤을때 정말 기뻤다.! 이 유니폼에 자극받아 2002년을 향해 노력하고 싶다."

 

2002년 그건 이별 시의 한일 양국 선수가 몇번이나 이야기했던 말이었다. 생각나는 것은 이동국의 한마디다.


 

■  쓰는 말도 자란 환경도 다른 2명이 이야기한 공통의 미래

 

"한일 모두 이번 유스 대표로 2002년 월드컵을 싸웠으면 좋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서로 절차탁마, 그리고 4년후에도 이번처럼 밤새 이야기하고 싶다!"

 

신기하게도 이동국 말과 비슷한 걸 오노 신지도 이야기했다.
"그날 밤 일은 절대로 잊을수없다. 앞으로도 그런 교류가 있었으면 한다. 한국과는 지금까지 몇번이나 대전했지만, 서로 노력해 아시아에서 세계로 나가고싶다."

 

말도 자란 환경도 다른 2명이 말한 공통의 미래. 지금까지는 숙명의 라이벌으로만 내내 일관됐지만, 라이벌인 동시에, 최고의 파너트가 돼자.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덧붙이자면 구세대의 박(창선)감독도, 한일은 숙명의 라이벌인 동시에 동반자여야고 말했다.

 

 

 

■  그후로부터 약20년 세월이 지나가려한다.

 

그 의사표현이 2번의 한일전 직후에 취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시합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한국 선수들은 자기 벤치로 돌아가지 않고, 우선 일본 벤치앞에 정렬해, 키요쿠모 감독이하, 일본 스태프에 인사했다.

그건 일본 실력을 인정하며, 대전한 것에 감사하다는 의사 표현으로, 박(창선)감독이 시합전에 지시한 것이다.

"이겨도 져도, 선수들에게는 일본 벤치에 인사하도록 지시했다. 일본은 이후에도 라이벌이지만, 우리들의 파트너이기도 하니까"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됐을 때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양국 선수는 23세가 된다.

이후의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만은 분명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개척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일 축구 신시대의 여명은 벌써 눈앞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그후로 약2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나려하지만, 지금도 "치앙마이의 밤"은 잊을수 없다. 그날 밤의 사건이야말로, 지금도 한일 축구 보도에 관여하는 나의 원점이 되고 있다.

 

(글 = 신무광 慎武宏)

※※ 98 AFC U-19 챔피언십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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